삽화까지 보시려면 주소창에 <어린이 동산>을 넣으시고 <어린이 동산>홈페이지에서 보시면 됩니다. 이번 호에는 삽화가 재미있네요.^^
글/조무호·그림/이은영
영식이는 요즘 신이 났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쌍안경이 생겼다. 일주일 전에 외삼촌이 군대에 가면서 아끼던 것을 주고 갔다. 배율은 일곱 배이고 빛을 모으는 성능이 좋아서 밤에도 잘 보이는 것이다. 삼촌은 첫 휴가를 나올 때 도감을 안 보고 새 이름 서른 마리만 외우면 아예 주겠다고 했다. 영식이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속으로‘꼴랑, 서른 마리야? 식은 죽 먹기지!’하면서 한 마리씩 손가락을 꼽으며 셌다.
‘참새, 제비, 비둘기, 갈매기, 왜가리, 백로, 꿩, 솔개, 청둥오리……독수리……, 또, 또…….’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는데 열 마리도 채 못 넘기고 더듬거렸다. ‘누가 삼촌 아니랄까 봐, 꼭 숙제를 낸다니까.’하면서 큰 소리로 말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눈만 뜨면 새를 보고 자라서 금방 외울 거라 생각했는데 헷갈렸다. 생김새는 떠올라도 이름은 입 안에서 맴돌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도감을 뒤지고 새를 관찰한다. 다음 주 일요일엔 을숙도 갯벌에서 하는 탐조 대회에도 가기로 했다. 겨울 철새 무리에서 영식이 마음을 빼앗은 새는 *넓적부리 오리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도감으로 보는 순간 마음이 끌렸다. 노란 눈자위에 눈동자는 까만 콩을 박은 듯했고 부리는 주걱처럼 넓적했다. 넓적부리라는 이름도 부리 생김새를 보고 지었다고 했다. 그리고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오리들 중에 개체 수가 적은 철새라 했다. 그 넓적부리가 며칠 전에영식이네 집 앞까지 날아들었다. 영식이네 집은 강 바로 옆에 있어서 고깃배가 지나갈 땐 철썩이는 강물 소리가 집 안에서도 들린다. 영식이 방은 옥상에 있다. 대학에 다니는 외삼촌이 함께 살게 되면서 옥상에 새로 만든 방이다. 두 벽은 옥상 난간에 기역 자로 벽돌을 쌓았고 나머지 두 벽과 지붕은 조립식 패널로 지었다. 밖에서 보면 무슨 창고 같지만 안에 들어오면 꽤 넓다. 동쪽과 서쪽으로 창이 두 개 있다. 동쪽으로는 김해평야가 한눈에 보이고 서쪽으로는 강이한눈에 보인다. 책상 두 개 중에 영식이 책상은 서쪽 창가에 있다. 책상 옆엔 공책 세 개 정도 되는 거울이 걸려 있다. 영식이는 이 거울을 레이저 빔이라 불렀다. 이 강에서 지금까지 영식이 레이저 빔 맛을 모르는 새는 아마 없을 것이다. 영식이는 동생도 없고 학원에도 다니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거울 장난을 자주 했다. 거울로 햇살을 비추면 눈이 부신 새들은 머리를 갸웃거리다 마구 흔드는 놈도 있었다. 깃털이 새까만 물닭은 멀뚱거리다 물속으로 잠수를 할 때도 있었다. 한번은 건너편에서 낚시하는 할아버지를 비추다가 혼이 난 적도 있다. 그런 장난도 재미있었지만 이 창문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새털구름이 낀 날 강물은 색종이로 모자이크를 한 것처럼 수를 놓았다. 노을이 든 날엔강둑을 경계로 온갖 물감을 짜서 접었다 펼쳐 놓은 데칼코마니 같았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도 따라 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녁 무렵이면 숭어 새끼들이 뛰어올라 꼬리지느러미를 몇 번 흔들다 곤두박질쳤다. 이때 다리가 긴 왜가리나 백로 무리는 말뚝처럼 서 있었다. 발 앞으로 지나가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기다렸다. 그러다 물고기를 잡으면 공깃돌 던지듯 넙죽거리다 언제나 머리부터 삼켰다. 큰 고기를 삼킬 때는 가는 목이 불룩해지는 것도 보였다. 어떤 날은 초승달이 부메랑처럼 서산을 한 바퀴 돌아갈 때까지 꼼짝 않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려면 아직 두 시간은 더 남았는데, 영식이는 강 건너편 갈대밭 사이로 흐르는 물길에 쌍안경 초점을 맞춰 놓았다. 갈대밭 사이로 물길이 하나 나 있는데, 작은 고깃배도 드나들었지만 한낮엔 새들이 몸을 숨기고 놀기에도 좋았다. 낮 동안 새들은 갈대밭 가까이에서 놀다가 해 질 녘 넓은 강으로 나와서 영식이네 집 앞 선착장까지 올라왔다. 갈대밭 너머에는 채소를 기르는 비닐하우스가 줄지어 있고 전봇대 두 개를 이은 것보다 더 큰 미루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비닐하우스 뒤에서 방역차가 지날 때처럼 먼지가 뭉실거리더니 잠시 지나 지프차가 미루나무아래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두 사람이 내리고 뒤 따라 꼬리가 잘록하고 귀가 축 처진 개도 한 마리 내렸다. 어깨에는 낚시 가방 같은 것을 메고 있었다. 해거름에 강으로 낚시를 나온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타앙.” 조용하던 강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총소리는 잠잠하던 강물 위로 번지면서 갈대밭에 있는 새들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놀란 오리 무리가 빙빙 날면서 꽥꽥 소리를 질렀다. 참새보다 작게 보일 때까지 날아가서는 강물에 내리꽂히듯 앉았다. 아까 보았던 개가 푸덕거리는 오리를 물고 갈대밭에서 뛰쳐나왔다. 개가 열린 뒷문으로 뛰어 들어가자, 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앗, 저 사람들, 사냥꾼이었어!’
영식이는 저녁을 먹으면서 아빠한테 아까 본 일을 얘기했다. “그 사람들 여기가 어디라고 총질을 해. 철새 도래지가 바로 옆인데 참 얄궂지!” 영식이 아빠는 이 동네에는 철새 도래지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군데군데 걸어 놓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찾아온 밀렵꾼일 거라 했다. 영식이네는 강에서 고기를 잡기 때문에 집에서 70미터쯤 떨어진 곳에 배를 매어두는 선착장이 있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엔 갈대를 베어 버려서 강물이 잘보였다. 선착장 옆에는 배를 매어 두는 큰 통나무가 가로놓여 있다. 주로 왜가리, 백로, 갈매기들이 횃대처럼 올라앉아 깃을 다듬거나 부리를 비비는 곳이다. 통나무에도 자기 자리가 있는 것 같았다. 늘 앉던 곳에 똥을 싸서 통나무는 하얀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 같았다. 그곳에 앉아 있는 새들을 쌍안경으로 보면 날개깃 빛깔이며 부리모양, 다리 빛깔, 물갈퀴까지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았다. 한낮에 어쩌다 큰 강으로 나온 오리들은 강 가운데에 몰려 있었다. 그 무리 속에 넓적부리도 있었다. 영식이는 넓적부리를 선착장까지 어떻게 불러 모을까 며칠째 머리를 굴렸다. 궁리 끝에 밥찌꺼기와 벼를 뿌려 놓고 기다리기로 했다. 넓적부리는 주걱처럼 생긴 부리 안쪽에 빗살이 있어서 물위에 떠 있거나 얕은 곳에 있는 먹이를 잘 걸러 먹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고깃배가 지나가자 가장자리에 뿌려 놓은 하얀 밥알이 물살에 일렁거렸다. 하지만 넓적부리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도록 퉁퉁 불은 밥알이 그대로 있더니 나흘째 아침에야 말끔했다. ‘됐어, 드디어 넓적부리가 왔어!’ 영식이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 다음 날에도 말끔했다. “아빠, 선착장에 전등 하나만 달아 주세요.” 영식이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아빠한테 대뜸 말했다. 처음엔 쓸데없는 전기 낭비한다고 뭐라 하시다가 얘기를 듣고는 달아 주었다. “잘 때는 꼭 꺼야 한다.”
전등을 달아 주면서 아빠가 말했다. “예.”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밥알이 그대로 있었다. 못 보던 전등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곧 낯이 익을 거야.’ 전등불 때문에 맛있는 밥알을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며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지나니 불빛이 낯익었는지 오리들이 몰려들었다. ‘오늘 밤엔 직접 봐야지.’ 영식이는 마음이 잔뜩 부풀어 쌍안경에 삼각대까지 달아 놓고 기다렸다. 오리가 오지도 않았는데 미리 창문을 열어 놓아서 강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예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다려야겠다고 두꺼운 이불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빠와 엄마가 9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낙동강에 철새를 몰래 잡는 밀렵꾼이 있다는 말이 언뜻 들렸다. 아나운서는 철새 도래지에서 밀렵을 하면 벌금을 물고, 잡은 것을 먹는 사람도 벌을 받는다고 했다. 며칠 전에 본 그 사람들도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 며칠 전에 그 사람들이 아닐까요?” “글쎄다.” 오늘도 영식이 아빠는 강에서 죽은 오리를 한 마리 건져 왔다. 청둥오리였다. 날개가 부러진 걸 보고 총에 맞은 것 같다고 했다. 강둑에 구덩이를 파서 묻어 주었다. “엄마, 마루에 불 켜지 마세요.” 까닭을 모르는 엄마는 무슨 말이냐는 듯 아빠를 바라보았다. “글쎄, 우리 아들이 무슨 재미난 일을 꾸미는 모양인데 한번 지켜보자고.” 아빠가 엄마한테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내일 아침 늦잠은 자지 마라.” “예.” 의자 등받이를 돌려서 책상에 붙였다. 삼각대 높이 때문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다리가 저려서 몇 번이나 콧등에 침을 발랐다.
삼십 분 넘게 기다리니 오리 한 마리가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부리가 넓적한 것을 보니 넓적부리가 틀림없었다. 경계를 하는 듯 두리번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선착장 앞까지 다가오더니 먹이는 먹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다 금방 가 버렸다. ‘이상하네. 먹을 것도 많이 있는데……. 혼자 실컷 먹고도 남을 텐데……. 왜 가는 거야, 바보같이.’ 한껏 부풀었던 영식이 마음은 밀물을 만난 달랑게 모래 구슬처럼 허물어졌다. 뒤집어쓴 이불을 확 걷어 제쳤다. 이불 위에 벌러덩 누워 발뒤꿈치로 벽만 콕콕 찍었다. ‘그럼, 뿌려 놓은 밥알은 누가 먹은 거야?’ 영식이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스쳐갔다. “새들은 먹이를 찾아 나설 때나 먼 거리를 이동할 땐 무리의 우두머리가 맨 앞에 섭니다.” 전에 주남저수지에서 설명을 해 주던 선생님 말씀이 떠올라 벌떡 일어났다. ‘야호!’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했다. 아까 돌아갔던 녀석인지 몰라도 한 마리가 앞장서고 스무 마리가 넘게 뒤따라왔다. 서운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녀갔던 놈이 친구를 데려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까는 정찰을 나온 탐정인 셈!’ 모두 넓적부리였다. “찹찹찹 찹찹!” 오리들이 밥알을 먹을 땐 정말 게걸스러웠다. 너무 빨리 먹다가 마른 풀잎이 목에 걸렸는지 부리를 마구 흔드는 놈도 있었다. ‘저런, 좀 천천히 먹지.’ 그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영식이는 그만 쿡 웃음이 나왔다. 창문을 열어 놓아서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모두 머리를 치켜들고 두리번거렸다. “곽 곽!” 무리 중에 한 마리가 소리를 냈다. 그러자 이내 부리를 박고 열심히 먹었다. 아마 우두머리가‘별것 아니야.’하는 것 같았다. 한 마리는 물풀 줄기를 입에 물고 있었는데 물이 뚝뚝떨어지는 것도 보였다. “오늘부터 너희 이름은 넙죽이다. 넙죽이!” 영식이는 이름도 지었다. 부리가 넓적한 데다 먹이를 잘 받아 먹어서 넙죽이라 지었다. ‘저 녀석들이 알아듣는다면 안 좋아하겠는데?’ 영식이는 자기가 지어 놓고도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넙죽이들은 밥찌꺼기를 먹고 물 밖에 뿌려 놓은 낟알까지 다 먹었다. 오리들이 물 밖으로 나온 걸 보고 어디서 털빛이 검은 고양이가 살금살금 다가왔다. 무리에서 보초를 서던 놈이‘과악 과악!’소리를 냈다. 아까하고 소리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모두 고개를 쳐들고 두리번거리더니 몇 마리는 물속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고양이도 넙죽이들이 물로 들어가는 걸 보고는 금방자리를 떴다. 집 없는 고양이는 아닌 듯했다. 고양이가 떠나자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마른 갈대 잎을 몇 번 자박자박 밟으며 주춤거렸다. 아마 잠자리를 만드는 것 같았다. 꽁지깃을 살래살래 흔들다 이내 날갯죽지 속으로 부리를 묻었다. 밤이 깊어 서리가 내린 갈대 잎은 달빛을 받아서 반짝거렸다. 강물이 어는지 달빛이 얼음 위로 누렇게 번졌다. 어느새 유리창엔 성에꽃이 활짝 피었다. 영식이는 온갖 꽃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데 달이 구름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성에꽃은 솜사탕 녹듯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달이구름 속에서 빠져나왔을 때 영식이는 어느새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수많은 넙죽이들이 목에 끈을 묶고 영식이가 탄 배를 끌고 있었다. 영식이 옆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넙죽이 새끼들이 잠들어 있었다. 영식이는 새끼 오리들이 깰까봐 숨소리도 죽였다. 얼마나 멀리 나왔는지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리들은 무섭지도 않은 듯 나아갔다. 갑자기 수평선 너머에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집채만 한 파도가 작은 배를 삼킬 듯이 밀려왔다. 영식이를 태운 배를 확덮치려는 순간 넙죽이들은 작은 배를 매달고 하늘로 둥둥 날아올랐다. “타앙!” 새벽 무렵 총소리가 났다. 영식이는 뒤집어쓴 이불이 무거워 발로 한 번 걷어찼을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빠가 창문도 안 닫고 자면 어떡하느냐고 하면서 어젯밤에 총소리가 들렸다고 혀를 찼다. ‘아차, 내 넙죽이!’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선착장으로 뛰어갔다. 전구는 깨진 채 바람에 흔들 거렸고 깃털 몇 개가 서릿발에 엉겨 붙어 있었다. 영식이는 쌍안경을 들고 나와서 강을 살폈다. 어디에도 넙죽이는 보이지 않았다. 간밤엔 날씨가 추웠는지 강은 얼음이 제법 두텁게 얼어 있었다. 군데군데 얼지 않은 곳이 있었지만 다른 새들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에 전등을 끄지 않아서 넙죽이가 밀렵꾼에게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아빠, 나중에 그물 걷으러 나가면 꼭 찾아봐 주세요.” “그래, 알았다. 그런데 오리들이 그렇게 놀랐는데 이 근처에 있겠니. 겁도 없이 이제 남의 집 대문 앞에까지 와서 총질을 해 대네. 참 나쁜 인간들이야.” 얼음은 점심때를 지나니 얕은 곳부터 녹아서 배들이 다녔다. 뱃머리에 부딪쳐 깨진 얼음조각들이 사각거리며 튀어 올랐다. “짐승들은 해코지하면 살던 곳을 떠나지.” 그물을 걷고 돌아온 아빠는 넙죽이가 보이지 않더라는 얘기를 했다.
영식이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밀렵꾼이 잡혀서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넙죽이는 선착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째 강은 가운데에 방바닥만큼만 남기고 꽁꽁 얼었다. 배가 고픈 새들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쌍안경으로 보니 종류가 많았다. 영식이는 새 도감을 펼쳐 가며 하나하나 이름을 불렀다. 청둥오리, 쇠오리, 고방오리, 흰죽지, 물닭까지 있었다. 왜가리도 한 마리 있었다. 얼음 위에 올라온 몇 마리는 장난을 쳤다. 덩치가 작은 쇠오리였다. 잠수를 잘하는 물닭은 연거푸 물속으로 드나들었다. 삭아 내린 물풀줄기를 물고 올라왔다. 기다렸다는 듯 다른 오리들이 쭉 따라붙었다. 도망가던 물닭이 홱 돌아서니 뒤따르던 놈들이 쭈루룩 미끄러 지면서 얼음에 부리를 처박았다. 그 틈바구니에서 행동이 이상한 오리가 있었다. 한쪽 날갯죽지를 늘어뜨린채 앉아 있었다. ‘혹시 넙죽이가 아닐까?’ 영식이는 다시 찬찬히 바라보았다. 머리가 초록빛이 나는 넓적부리였다. 다른 새들은 바삐 움직이는데 그 녀석만 날개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바로 옆엔 넓적부리 암컷도 있었다. ‘맞아! 총에 맞은 넙죽이야!’ 영식이는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았다. 살얼음이 어는지 다른 새들은 끼리끼리 자리를 떴다. 넙죽이 수컷도 몇 번 날개를 푸덕거렸지만 날지는 못했다. 다행히 날개는 접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암컷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날개를 펴고 움찔움찔하면서 뒤뚱거렸다. 왼쪽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았다. “아빠, 넙죽이를 찾았는데 두 마리 모두 다쳤어요, 아마 총에 맞은 것 같아요. 아빠가 좀구해 주세요.” 영식이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아빠한테 말했다. “얼음이 얼어서 배가 나가기도 어렵지만 다친 오리가 놀라서 버둥대면 상처가 덧날지도 몰라. 얼음이 녹을 때까지 그냥 살펴보거라.” 아빠는 영식이를 달래려고 그렇게 말을 했다. 다음 날 강은 더 꽁꽁 얼었다. 넙죽이는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고파 선착장에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낟알을 흠뻑 뿌려 두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대로 있었다. 낮에는 솔개가 높이 떠서 빙빙 날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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