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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음악의 세계/시와 음악의 세계

조무호 중편동화, 어린이동산 연재. 1/넓적부리 넙죽이 / 1

제 목 :   조무호 중편동화, 어린이동산 연재. 1  조회수 :   87
작성자 :   :  조무호 작성일 :  :   2007.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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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편 동화 /넓적부리 넙죽이 / 1  
 
글/조무호·그림/이은영

영식이는 요즘 신이 났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쌍안경이 생겼다. 일주일 전에 외삼촌이 군대에 가면서 아끼던 것을 주고 갔다. 배율은 일곱 배이고 빛을 모으는 성능이 좋아서 밤에도 잘 보이는 것이다.
삼촌은 첫 휴가를 나올 때 도감을 안 보고 새 이름 서른 마리만 외우면 아예 주겠다고 했다. 영식이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속으로‘꼴랑, 서른 마리야? 식은 죽 먹기지!’하면서 한 마리씩 손가락을 꼽으며 셌다.

‘참새, 제비, 비둘기, 갈매기, 왜가리, 백로, 꿩, 솔개,
청둥오리……독수리……, 또, 또…….’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는데 열 마리도 채 못 넘기고 더듬거렸다. ‘누가 삼촌 아니랄까 봐, 꼭 숙제를 낸다니까.’하면서 큰 소리로 말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눈만 뜨면 새를 보고 자라서 금방 외울 거라 생각했는데 헷갈렸다. 생김새는 떠올라도 이름은 입 안에서 맴돌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도감을 뒤지고 새를 관찰한다. 다음 주 일요일엔 을숙도 갯벌에서 하는 탐조 대회에도 가기로 했다.
겨울 철새 무리에서 영식이 마음을 빼앗은 새는 *넓적부리 오리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도감으로 보는 순간 마음이 끌렸다. 노란 눈자위에 눈동자는 까만 콩을 박은 듯했고 부리는 주걱처럼 넓적했다. 넓적부리라는 이름도 부리 생김새를 보고 지었다고 했다. 그리고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오리들 중에 개체 수가 적은 철새라 했다. 그 넓적부리가 며칠 전에영식이네 집 앞까지 날아들었다.
영식이네 집은 강 바로 옆에 있어서 고깃배가 지나갈 땐 철썩이는 강물 소리가 집 안에서도 들린다. 영식이 방은 옥상에 있다. 대학에 다니는 외삼촌이 함께 살게 되면서 옥상에 새로 만든 방이다. 두 벽은 옥상 난간에 기역 자로 벽돌을 쌓았고 나머지 두 벽과 지붕은 조립식 패널로 지었다. 밖에서 보면 무슨 창고 같지만 안에 들어오면 꽤 넓다. 동쪽과 서쪽으로 창이 두 개 있다. 동쪽으로는 김해평야가 한눈에 보이고 서쪽으로는 강이한눈에 보인다.
책상 두 개 중에 영식이 책상은 서쪽 창가에 있다. 책상 옆엔 공책 세 개 정도 되는 거울이 걸려 있다. 영식이는 이 거울을 레이저 빔이라 불렀다. 이 강에서 지금까지 영식이 레이저 빔 맛을 모르는 새는 아마 없을 것이다.
영식이는 동생도 없고 학원에도 다니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거울 장난을 자주 했다. 거울로 햇살을 비추면 눈이 부신 새들은 머리를 갸웃거리다 마구 흔드는 놈도 있었다. 깃털이 새까만 물닭은 멀뚱거리다 물속으로 잠수를 할 때도 있었다. 한번은 건너편에서 낚시하는 할아버지를 비추다가 혼이 난 적도 있다. 그런 장난도 재미있었지만 이 창문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새털구름이 낀 날 강물은 색종이로 모자이크를 한 것처럼 수를 놓았다. 노을이 든 날엔강둑을 경계로 온갖 물감을 짜서 접었다 펼쳐 놓은 데칼코마니 같았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도 따라 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녁 무렵이면 숭어 새끼들이 뛰어올라 꼬리지느러미를 몇 번 흔들다 곤두박질쳤다. 이때 다리가 긴 왜가리나 백로 무리는 말뚝처럼 서 있었다.
발 앞으로 지나가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기다렸다. 그러다 물고기를 잡으면 공깃돌 던지듯 넙죽거리다 언제나 머리부터 삼켰다. 큰 고기를 삼킬 때는 가는 목이 불룩해지는 것도 보였다. 어떤 날은 초승달이 부메랑처럼 서산을 한 바퀴 돌아갈 때까지 꼼짝 않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려면 아직 두 시간은 더 남았는데, 영식이는 강 건너편 갈대밭 사이로 흐르는 물길에 쌍안경 초점을 맞춰 놓았다. 갈대밭 사이로 물길이 하나 나 있는데, 작은 고깃배도 드나들었지만 한낮엔 새들이 몸을 숨기고 놀기에도 좋았다. 낮 동안 새들은 갈대밭 가까이에서 놀다가 해 질 녘 넓은 강으로 나와서 영식이네 집 앞 선착장까지 올라왔다.
갈대밭 너머에는 채소를 기르는 비닐하우스가 줄지어 있고 전봇대 두 개를 이은 것보다 더 큰 미루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비닐하우스 뒤에서 방역차가 지날 때처럼 먼지가 뭉실거리더니 잠시 지나 지프차가 미루나무아래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두 사람이 내리고 뒤 따라 꼬리가 잘록하고 귀가 축 처진 개도 한 마리 내렸다. 어깨에는 낚시 가방 같은 것을 메고 있었다. 해거름에 강으로 낚시를 나온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타앙.”
조용하던 강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총소리는 잠잠하던 강물 위로 번지면서 갈대밭에 있는 새들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놀란 오리 무리가 빙빙 날면서 꽥꽥 소리를 질렀다. 참새보다 작게 보일 때까지 날아가서는 강물에 내리꽂히듯 앉았다.
아까 보았던 개가 푸덕거리는 오리를 물고 갈대밭에서 뛰쳐나왔다. 개가 열린 뒷문으로 뛰어 들어가자, 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앗, 저 사람들, 사냥꾼이었어!’


영식이는 저녁을 먹으면서 아빠한테 아까 본 일을 얘기했다.
“그 사람들 여기가 어디라고 총질을 해. 철새 도래지가 바로 옆인데 참 얄궂지!”
영식이 아빠는 이 동네에는 철새 도래지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군데군데 걸어 놓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찾아온 밀렵꾼일 거라 했다.
영식이네는 강에서 고기를 잡기 때문에 집에서 70미터쯤 떨어진 곳에 배를 매어두는 선착장이 있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엔 갈대를 베어 버려서 강물이 잘보였다. 선착장 옆에는 배를 매어 두는 큰 통나무가 가로놓여 있다.
주로 왜가리, 백로, 갈매기들이 횃대처럼 올라앉아 깃을 다듬거나 부리를 비비는 곳이다. 통나무에도 자기 자리가 있는 것 같았다. 늘 앉던 곳에 똥을 싸서 통나무는 하얀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 같았다. 그곳에 앉아 있는 새들을 쌍안경으로 보면 날개깃 빛깔이며 부리모양, 다리 빛깔, 물갈퀴까지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았다.
한낮에 어쩌다 큰 강으로 나온 오리들은 강 가운데에 몰려 있었다. 그 무리 속에 넓적부리도 있었다. 영식이는 넓적부리를 선착장까지 어떻게 불러 모을까 며칠째 머리를 굴렸다.
궁리 끝에 밥찌꺼기와 벼를 뿌려 놓고 기다리기로 했다. 넓적부리는 주걱처럼 생긴 부리 안쪽에 빗살이 있어서 물위에 떠 있거나 얕은 곳에 있는 먹이를 잘 걸러 먹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고깃배가 지나가자 가장자리에 뿌려 놓은 하얀 밥알이 물살에 일렁거렸다. 하지만 넓적부리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도록 퉁퉁 불은 밥알이 그대로 있더니 나흘째 아침에야 말끔했다.
‘됐어, 드디어 넓적부리가 왔어!’
영식이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 다음 날에도 말끔했다.
“아빠, 선착장에 전등 하나만 달아 주세요.”
영식이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아빠한테 대뜸 말했다.
처음엔 쓸데없는 전기 낭비한다고 뭐라 하시다가 얘기를 듣고는 달아 주었다.
“잘 때는 꼭 꺼야 한다.”


전등을 달아 주면서 아빠가 말했다.
“예.”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밥알이 그대로 있었다. 못 보던 전등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곧 낯이 익을 거야.’
전등불 때문에 맛있는 밥알을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며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지나니 불빛이 낯익었는지 오리들이 몰려들었다.
‘오늘 밤엔 직접 봐야지.’
영식이는 마음이 잔뜩 부풀어 쌍안경에 삼각대까지 달아 놓고 기다렸다.
오리가 오지도 않았는데 미리 창문을 열어 놓아서 강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예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다려야겠다고 두꺼운 이불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빠와 엄마가 9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낙동강에 철새를 몰래 잡는 밀렵꾼이 있다는 말이 언뜻 들렸다. 아나운서는 철새 도래지에서 밀렵을 하면 벌금을 물고, 잡은 것을 먹는 사람도 벌을 받는다고 했다. 며칠 전에 본 그 사람들도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 며칠 전에 그 사람들이 아닐까요?”
“글쎄다.”
오늘도 영식이 아빠는 강에서 죽은 오리를 한 마리 건져 왔다. 청둥오리였다. 날개가 부러진 걸 보고 총에 맞은 것 같다고 했다. 강둑에 구덩이를 파서 묻어 주었다.
“엄마, 마루에 불 켜지 마세요.”
까닭을 모르는 엄마는 무슨 말이냐는 듯 아빠를 바라보았다.
“글쎄, 우리 아들이 무슨 재미난 일을 꾸미는 모양인데 한번 지켜보자고.”
아빠가 엄마한테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내일 아침 늦잠은 자지 마라.”
“예.”
의자 등받이를 돌려서 책상에 붙였다. 삼각대 높이 때문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다리가 저려서 몇 번이나 콧등에 침을 발랐다.(계속)